이준혁 매직에코 매니저

준혁. 독학으로 익힌 프로그래밍 실력이 상당함. 대기업 취업 기회도 마다하고 스타트업인 매직에코에서 사물인터넷(IoT) 제품 개발과 함께 메이커 교육을 담당하고 있음. 최근 아두이노 관련 서적을 출판했음.

남과 다른 길을 걷는 소프트웨어(SW) 인재를 찾는 과정에서 눈에 쏙 들어온 프로필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전 포털 사이트를 검색했다. 한 블로거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SW 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아두이노가 초등학생에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중략). 이준혁의 ‘아두이노 입문편’을 보고 오히려 아두이노가 초등학생에게도 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마치 삼촌이 일대일로 가르쳐주는 듯 이해가 쉬웠다. 한 사람의 책이 포기했던 프로그래밍을 쉽고 재밌는 장난감으로 여기게 만들다니, 놀랍다.’

순간, 은둔의 고수를 찾았다는 설렘과 출판사의 마케팅 의혹이 교차했다.

서울 성수동 IT 종합센터 5층 매직에코 사무실. 이준혁 매니저는 서른 살이라는 나이와 다섯 살 아들을 둔 아빠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프로그래밍에 몰두하게 된 배경과 대기업 최종 면접을 박차고 스타트업에 합류해 전문서적을 내기까지 담담히 털어놓는 과정에서 ‘비범함’이 느껴졌다.

“엑셀이 제일 쉬웠어요”

“처음부터 프로그래밍에 빠진 건 아니에요. 초등학생 때 컴퓨터를 좋아하긴 했는데, 분해하고 조립하는 재미가 컸죠. 대학입시 때 경영ㆍ회계를 택한 것도 SW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래밍에 솔깃해진 건 대학생 때였다. 경북대 재학 시절, 국립대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서울대 경영학 수업을 들으면서 경영정보학(MIS)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울대 대학원생의 논문을 정리해주면서 데이터 정리의 감도 생겼다. 그래도 프로그래밍이나 개발자가 ‘나의 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공자 대다수가 그렇듯, 그도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회계사로 일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지루하고 불만에 차 있었다. 그렇다고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처럼 군대를 다녀오고 이른 결혼으로 ‘대학생 가장’이 되면서 삶은 점점 혹독해졌다.

“막노동에 은행 경비, 백화점 식당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했어요. 한 달 뼈 빠지게 일해도 손에 쥐는 건 겨우 100만 원 조금 넘는 수준이었죠.”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던 중 외국계 보험사의 엑셀 사무보조 구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엑셀은 잘 몰랐지만 사무실 근무와 월 150만 원이라는 금액이 ‘꿈의 직장’처럼 느껴졌다. 이 매니저는 무작정 구인에 응하고 엑셀 책을 탐독했다.

책으로 배운 엑셀이지만 술술 풀렸다. 단순 반복되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엑셀 자동화 프로그램인 VBA도 익혔다. 몇 시간이 걸릴 엑셀 보조업무를 출근 후 10분 만에 끝내고 다른 동료의 엑셀 업무를 자동화해줬다. 계산서, 출결근 관리, 재무제표 등의 엑셀 파일이 이 매니저에게 맡겨지면 몇 분 내로 뚝딱 정리되는 신기가 발휘됐다. 나중엔 회사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엑셀 강의를 부탁할 정도였다.

프로그래밍에서 희열을 맛본 이 매니저의 다음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업체인 ‘비아이매트릭스’로 자리를 옮겨 엑셀 프로그래밍을 본격화했다. 2011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 경진대회를 통해 엑셀 부문 MVP(Most Valuable Professional)가 됐다. 엑셀을 손에 잡은 지 채 2년도 안 돼 이룬 성과다.

한번 발동이 걸린 프로그래밍 갈증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서게 했다. 중소벤처기업인 ‘네오랩컨버전스’에서 모바일 개발자로 일하게 된 것. 네오위즈 공동창업자인 이상규 대표가 만든 회사로, 전자펜으로 종이 교재에 인쇄된 신호를 읽어 음성 등으로 재현하는 ‘닷코드’ 기술을 활용해 ‘뽀로로 틱톡펜’ 같은 교육용 기기를 개발해왔다.

스마트펜의 가능성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이 대표의 패기에 반했지만, 안정된 수입과 직장을 원하는 가족의 눈길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대기업 취업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매직에코의 최재규 대표를 만났다.

“뒤늦게 프로그래밍을 좋아하게 됐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했어요. 그런데 미국의 IoT가 메이커 활동으로 시작해 성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삼성 개발자 출신인 최 대표의 경험과 안목은 이 매니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사이 삼성에서 최종면접 통보가 왔다. 다음은 그저 불합격으로만 알고 있는 아내에게 털어놓지 못한 얘기다.

“삼성의 최종면접은 임원이 합니다. 그 앞에 선 순간 신기하게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명확해졌죠. 면접관 질문에 짧게 대답하고 대신 삼성이 직면할 지도 모를 위기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짧은 침묵 후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자넨 벤처가 더 어울리겠군.”

중국 진출하는 ‘아두이노 입문편’

2014년 매직에코에 합류한 이 매니저의 주요 업무는 아두이노와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온·오프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스스로 고군분투하며 깨우친 덕분에 코딩, 알고리즘을 잘 모르는 어린이나 일반인에게 친절하고 재밌게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최 대표와 함께 제작한 메이커 관련 인터넷 강의 ‘ODIY(Opensource DIY)’는 구성과 내용을 칭찬하는 댓글로 넘쳐난다. 얼마 전 이 매니저는 이를 책으로 엮었다. ‘진정한 실력과 경력은 책으로 증명돼야 한다’는 최 대표의 지론에 따른 것이지만, 90개의 강의를 제작하면서 쌓인 노하우를 정리해보고 싶기도 했다.

지난 10월에 출간한 ‘아두이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프로젝트 입문편’은 곧 중국어로 번역돼 중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중국 정부가 직접 메이커 1억 명을 양성해 제조업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낼 것이란 방침이 알려지면서 출판사에서 더 서두르고 있다.

개발자로서 이 매니저는 경계가 없다. 모바일, 웨어러블, IoT 등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에 자신의 프로그래밍을 시험한다. 그것이 때론 매직에코의 사업이 되기도 하고, 부수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 대표는 “지금 이 매니저의 실력이라면 대기업에 얼마든지 경력자로 스카우트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이 매니저는 고개를 흔든다. 경력이 쌓일수록 프로그래밍 업무에서 멀어질 테고, 관리자로 시간을 채우다가 종내에는 퇴직 후 치킨집 창업이란 수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보다는, 오래도록 개발자이고 싶다. 세계는 넓고 프로그래밍할 일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출처 :  머니투데이,  기사 원문보기